14기_윤기덕_4월 북킹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마음이 답답할 때 아무데나 펼쳐 놓고 읽어도 위안이 되는 책들이 있다. 틀에 박힌 일상생활로부터 훌쩍 빠져나가기 위한 읽을거리로 가까이 두고 있는 책 중에 류시화의 책들도 포함되어 있다. 류시화의 책들로부터 받은 위안은 단순히 기분전환 이상의 것이고 마치 홀로 천천히 숲을 거닐 때처럼 잡념이 사라지고 생각이 단순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어릴 적부터 류시화의 시집과 책들을 가까이 할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류시화 작가가 그의 작품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을 안다.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분명히 당신을 기억한다.’ 라는 말이다. 나도 어쩌면 류시화 작가를 접한 것이 우연이 아닌 절대적인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군 입대 전 친구 한 명과 한달 가량 인도를 여행한 일이 있었다. 우리 모두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 큰 감동과 희열을 느끼고 인도로 무작정 길을 잡은 것이다. 준비물이야 갈아입을 몇 벌과 한화 100만원 그리고 류시화의 책 한 권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지명과 마을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 대책 없는 30일 가량의 여행이 시작되었고, 여행 중 아주 우연히도 아니 필연적으로 히말라야가 보이는 북인도 작은 마을에서 류시화 작가를 마주쳤다. 10년 동안 한국에 있었던 날보다 인도에 있던 시간이 더 길었다는 류시화 작가는 인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구루(불교, 힌두교에서 일컫는 스승)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류시화 작가와 약 15일간을 함께 여행하며 책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10년 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소소한 감동과 삶의 의미를 다시금 마음에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여행의 의미를 꼭 무얼 보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세계로의 떠남으로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임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책의 한 부분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인생에서 때로 자신이 바람의 방향을 잘못 탄 거미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기가 걷고 있는 길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20대 중반이 넘었을 때 나는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소위 영적인 추구라는 것을 시작했다. 그런 끝에 인도까지 오게 됬다.” 나에게 가장 감명을 주었다기보다는 현재 나에게 가장 와 닿고 공감 가는 작가의 과거의 모습이다. 그런데 작가가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그가 스승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그를 기다리고 있고 스승이 그를 찾아낸다는 사실이다. “그렇습니다. 우린 우리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서둘러 어딘가로 가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책에 등장하는 힌두인들의 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작가와 우리는 진정한 여행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책장이 닳도록 읽었던 에피스드를 한 가지 소개하자면 가장 먼저 ‘세 가지 만트라’이다. 히말라야 근처에서 작가는 납작바위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싯다 바바’라는 요가 수행자를 만나게 된다. 작가는 그의 아름다운 자태에 마음을 빼았겼고 그의 평화로운 미소에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 동안 자신이 찾아 헤매던 완벽한 스승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제자가 되길 청하여 제자가 되었다. 그렇게 작가는 히말라야의 기슥 동굴에서 물항아리 하나를 전 재산으로 살고 있는 싯다 바바의 제자가 되었다. 처음 작가는 왕복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항아리에 물을 길어 오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다되가도록 물을 길어오는 일만 하던 작가는 아무 가르침도 주지 않는 싯다 바바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토록 평화롭고 고요해 보이던 스승이 작가가 입문한 뒤부터 완전히 단 사람으로 돌변해 더 이상 명상하는 자세로 앉아 있지도 않았으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산을 쏘다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작가를 사정없이 부려먹었다. 그러고는 싯다 바바는 자신이 40년 동안을 혼자 자 버릇했기 때문에 작가가 옆에 있는 것이 영 불편하니, 동굴 밖에다 작은 움막을 짓고 거기서 혼자 생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히말라야 기슭이라고는 하지만 낮에는 태양이 열대지방 못지 않게 뜨거웠기 때문에 그 곳에 움막을 지으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고생 끝에 움막을 완성하고 물을 길기 위해 한 시간이 넘는 거리의 계곡으로 향한다. 다녀와 보니 작가가 고생해 지은 움막은 온데간데 없었다. 스승이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것이라 확신한 작가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증거도 없이 함부로 스승을 다그칠 순 없는 일이라 집을 왜 짓지 않았냐는 싯다 바바의 호통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작가는 다시 움막을 짓기 시작해 늦은 오후에 집은 완성 시켰다. 어제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는 싯다 바바가 올 때까지 그 움막을 지키고 있었다. 이윽고 나타난 싯다 바바는 작가에게 요가 수행자에게 필수적인 세 가지 만트라를 전수하겠노라고 선언한다. 그리고는 작가를 데리고 산 위쪽에 있는 넙적 바위로 작가를 데려가 이 곳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잠시 명상에 들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 다음 만트라를 전수하겠다고 했다. 작가는 싯다 바바의 지시대로 명상에 들었고 반식나이 지나서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움막을 지은 쪽으로 달려갔다. 작가의 예상대로 오후에 만들어 놓은 움막은 온데간데 없이 또 사라졌고 한참 뒤에 싯다 바바는 갑자기 나타나 작가가 참을성 없이 내려오는 바람에 만트라 전수할 기회를 놓쳤다고 오히려 더 큰소리를 쳤다. 그날 밤 작가는 동굴에서 잠을 청하면서 깨달음이고 뭐고,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스승은 벌써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고 작가는 재빨리 배낭을 챙겼고 싯다 바바의 물항아리를 산아래로 내동쟁이쳐 산산조각 내어 버렸다. 쏜살같이 근처 마을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온 작가는 다른 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신작로 저편에서 누더기 담요를 두른 싯다 바바가 나타났다. 물항아리를 깬 것 때문에 자신을 잡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한 작가는 겁을 먹었다. 하지만 싯다 바바는 열린 차창으로 작가를 쳐다보며 말했다고 한다. “그대에게 세 가지 만트라를 전수시켜주기 위해서 왔다. 이 세가지 만트라를 기억한다면 그대는 다른 누구도 스승으로 섬길 필요가 없다. 그대의 가장 완벽한 스승은 그대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첫번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작가는 미치광이로 알았떤 싯다 바바가 더없이 훌륭한 스승임을 깨닫고 왁칵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인생의 여러 길을 다니면서 언제나 스승은 근처에 있다. 내가 탄 버스를 지켜보던 그 모습 그대로 언제나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고, 버스는 점점 멀어져 모퉁이를 돌아가고 다른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멈춰서지만 스승은 늘 그렇게 그만큼의 거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덮고, 바라나시의 갠지스 식당에 들러 자신의 다리뼈로 만든 피리를 불러주는 노인이야기를 실제 꼭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류시화의 삶과 사랑과 지혜에 대한 갈증과 꿈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여행기에는 오늘날 인도에 사는 모든 산과 강과 성자들의 이야기가 4월 봄밤의 별자리처럼 새록새록 새겨져 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인도인에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난과 삶의 고달픔이 있으나, 그들의 마음은 넉넉하기 그지 없다. 몇 년전 인도를 여행하면서 위로와 동정의 눈물이 아닌, 깨닫음과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비록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 처음느끼는 감동과 희열 그리고 삶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타고르의 ‘기탄잘리’에 등장하는 시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 길은 멉니다. 나는 태양의 첫 햇살을 수레로 타고 출발하여 수많은 별들에게 자취를 남기며 광막한 우주로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는 것이 가장 먼 길이며, 그 시련은 가장 단순한 음조를 따라가는 가장 복잡한 것입니다. 여행자는 자신의 문에 이르기 위해 낯선 문마다 두드려야 하고, 마지막 가장 깊은 성소에 다다르기 위해 온갖 바깥 세계를 방황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여기 당신이 계십니다.’ 하고 말하기까지 내 눈은 멀고도 광막하게 헤매었습니다…’ 이 책은 나에게 여행기를 넘어, 가끔 아침에 눈을 떳을 때 어떤 이유없는 허무감과 슬픔에 사로잡힐 때 나를 위로하는, 상대를 위로해주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작가가 싯다 바바에게 전수 받은 만트라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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